나는 한국에서 좋은 대학을 나왔다. 하지만 내가 졸업할 당시도 좋은 정규직 차리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물론 내가 내 전공과 관련된 분야가 아닌 마케팅직군에 지원해서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특히 대기업은 서류조차 통과가 되지 않았다.
다행히 졸업 직전에 외국계 의료기기 회사 마케팅 부서에 합격했는데, 면접서부터 나의 학교가 열일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면접에 들어오신 상무님은 친근한 인상으로 나의 학교에 대한 호감을 드러냈고 나는 직감으로 합격했다는 것을 알았다.
나의 첫 회사 생활은 정말 꿀이었다. 꿀보직이라는 것이 이건가 싶었다.
왜냐면... 명색이 product manager인데 내가 관리할 제품이 없었다.
좋게 말하면 나는 상무님의 장기적인 안목으로 인해 미래에 런칭될 제품의 PM으로 뽑힌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할일이 없는데 남는 head count를 맞추기 위해 뽑힌 것이었다. (마치 예산처럼 head count도 그 해 안에 못쓰면 사라진다)
그래서 당시의 내 회사생활은 아주 창의적 그 자체였다. 주어진 일이 없으니 내가 하는 모든 일은 내가 '주도적'으로 한 것이 되었다.
아마 내 매니저나 사수 입장에서 내가 놀지만 않고 뭐라도 하면 다행이었던 것 같다. 별 같지도 않은 일을 했어도 칭찬을 들었다.
당시를 기억해보면 나와 같이 뽑혔던, 확실한 job description이 있던 친구와는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 미루어 짐작건대 아무래도 나는 착착 일을 배워가던 그 친구가 약간은 부러웠던 것 같고, 그 친구는 하는일 없이 놀러 회사를 다니는 내가 맘에 들지는 않았을 것 같다. 물론 그 친구가 더 이뻤던 것도 작용했고 ㅎㅎ
그런데, 장기적 안목으로 날 뽑았던 상무님은 미국으로 발령받으셨고, 상무님의 이 이상한 계획(할일없는 애를 뽑는 것)에 동조했던 매니저님마저 가족때문에 휴직을 하게 되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나의 회사생활에 우산이 없어졌음을 알게 되었다. 원래 생각없이 노는애들이 생각없어 보여도 속으로는 엄청 불안하다.
이제 새로 온 매니저가 나의 롤에 대해 궁금해 하며 일을 시킬 것이고, 2년동안 놀고 먹었던 것을 온 회사 동료들이 알 것이다. 너무 두려웠다.
다행히 이름이 있던 회사여서 새 회사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또한 응당 새로 온 매니저와 기존 세력은 마찰이 있기 마련이므로, 회사를 떠나는 나를 탓하는 사람은 없었다.
어떤 일이 기다리는지도 모르면서 그저 조금 오른 월급과, 내가 일 못하는 것을 알 사람이 없다는 것 때문에 기분이 너무 좋았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철없었지만 이 때 회사를 옮기지 않았으면 난 아직 한국에서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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