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본에서 동경대 졸업생이 과로로 인해 자살했다는 이야기가 이슈인 것 같다. 일본 기업 문화를 그대로 베낀 우리나라에서도 이슈만 안 되었지 이런 일이 무수히 많을 것이다.
불행히도 나의 두번째 회사는 일본계 제약회사였다.
제약회사로 옮긴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첫째는 의료기기보다 규모가 크기 때문에 마케팅에 대해서 더 잘 배울 수 있을 것 같다는 점, 둘째는 아무래도 외근이 적으니 드라마에서와 같은 그런 멋진 회사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근거없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의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하지만, 경력직이어서 그런지 전 회사에서는 겪지 못했던, 아니 보지 못했던 일들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닥 재밌는 내용은 아니지만... '요즘것들의 사표'가 무한 공감이 되는 상황에서 나의 경험도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글을 쓴다.
1. work-life balance?
첫 회사의 동료분들은 거의 결혼을 하신 분들이었다. 남자 직원들은 좀 야근을 했었지만, 여자 직원들은 거의 6시쯤에 다 퇴근을 했다. 회식도 많이 없었고, 어쩌다 한 번 있는 회식은 크게 부담스럽지 않고 재밌는 자리였다.
하지만 여기서는 대부분의 여자 직원들은 미혼이었다. 나의 부장님, 상무님 등 흔히 말하는 골드미스였다. 그래서인지 아무도 퇴근을 제때하지 하지 않았다. 나의 사수격이었던 남자 차장이 아기가 생겼다고 하자 사장, 상무, 부장이 남긴 코멘트는 동일했다. '안바쁜가봐? 아기도 만들게'.
이 차장은 나의 사수 역할을 해야 했지만 가족과의 시간을 위해 7시쯤은 퇴근을 했다. 나와 부장은 12시까지 야근을 했는데 말이다. 그 당시에는 이 동료가 너무너무 싫었다. 부장은 사수 대신에 나에게 일을 직접 가르치며 짜증을 냈었다. 뭐 본래 자기 일이 아닌데 하는 것이니 그랬을 것이다. 나 역시 일은 끝이 없는데 얌체처럼 일찍 퇴근하는 그 사람이 싫었다.
그런데, 이제와 생각해 보면 나는 내가 싫어할 대상을 잘못 짚은 것 같다. 본인의 세력을 키우고 싶었던 부장은 타부서의 일까지 가져와서 나에게 시켰다. 타부서가 해당 일을 잘 못한다고 깍아내리면서 말이다. 나는 마케팅이면서 때로는 트레이닝 부서, 메디컬 부서의 일을 맡아서 했어야 했다. 상무는 회사에서의 입지가 불안한 상태였기 때문에 부장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부장이 일을 잘 못한다는 식으로 말하고 다녔다. 그럴 수록 부장은 더 완벽하게 일을 하기 위해 나를 달달 볶았다. 내가 불만을 가질까봐 꼭 이런 멘트를 달았다. '차장이 일을 안하니 너가 대신 해야지' 하면서...
솔직히 회사 자체는 돈이 많아서 일을 하는 것도 재밌고, 출장시마다 좋은 호텔 다니는 것은 좋았다. 하지만, 나의 정신세계는 피폐 그 자체였다. 가끔 집을 가면 하염없이 울었던 것 같다. 이 때부터 회사생활이라는 것에 대한 환상이 없어지면서 상사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게 된 것 같다. 그들에게 있어서 회사 이외의 삶은 없던 것 같다. 그저 남에게 자랑할 사회에서의 성공만이 필요하고 회사 이외의 삶을 말하는 것은 죄였다.
이 곳에서 대부분의 한국 회사원들이 왜 그렇게 힘들다고 말을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실제로 의미있는 일을 하기보다는 윗사람들의 정치적인 결정에 의해 가족과의 시간을 버리고 회사에서 소모되야 하는 사람들... 그리고 시간이 있건 없건 결혼과 아기를 낳으라는 사회... 모르겠다. 이게 우리 세대가 배가 불러서 life를 찾으며 불평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동안의 부조리를 이제야 성토하는 것인지...
2. Moral hazard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그렇게 깨끗한 사람이 아니다. 정리정돈도 잘 못하고 정신세계도 흔히 말하는 꼰대? + 비양심? 정도 되겠다.
뭐 회사 비품 한두개 가져간 것으로 내가 비윤리적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아마 알게 모르게 이정도는 했을 것이다. 아님 말고ㅎㅎ
구매부서는 아니었지만, 제약 마케팅은 팜플렛, 프로모션용 선물 등을 결정하는 자리였으므로 나는 많은 업자(vendor)들에게 꽤나 힘있는 사람이었다.
바쁜 부장님, 관심없는 차장님을 대신해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서 몇몇은 나에게 선물을 가져다 주기 시작하였다. 아니 뇌물이 맞는 단어일 것이다. 물론 진짜 돈을 횡령하려면 뭐... 방법은 있었지만... 난 그정도로 힘들지는 않아서 안했다. 만약 회사생활이 더 힘들었다면... 그런 유혹에 빠져서 철컹철컹? ㅎㅎ
벤더가 나에게 명절이라 선물을 보낸다고 집주소를 물어볼 때 본능적으로 나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바로 그 생각을 뒤엎은 것은 보상심리였다.
'내가 이렇게 힘들게 일하는데 이것도 받으면 안돼?', '회사에서 이번에 인센티브 못받을 것 같은데 이거라도 받아야지' 등등...
과일 등의 선물을 받으며 마냥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내 잘못이긴 하지만 회사를 원망하는 맘이 드는 것은 어쩔수 없다. 만약 회사가 나에게 정신적 스트레스를 주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나의 야근등에 대해 제대로된 보상이 이루어졌으면 어땠을까? 그래도 내가 양심에 어긋나게 저런 뇌물들을 받았을까...
청렴도가 높다는 싱가폴에서는 공무원이 모두의 워너비 대상이다.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경쟁력있는 월급과 복지가 그들의 청렴도 유지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하튼 나만 몰랐던 나의 비윤리적인 모습을 알게 된 사건? 정도로 마무리 하고 싶다.
3. 비정규직
첫 회사에서도 비정규직이 있었다. 창고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비정규직이 많았고 그들은 명절때마다 정규직과 다른 선물을 받으며 불만을 표출하곤 했다.
솔직히 말해 그들의 불만에 난 관심이 없었다. 관심이 없었다기보다는, 뭐가 뭔지도 몰랐다라는 것이 맞을 것이다.
회사를 옮기고 나서는 비정규직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알게 된 것 같다. 마치 계급처럼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받는 대우가 달랐다. 업무강도는 비슷하다는 것이 그나마 평등한 점이랄까?
내가 업무가 많다고 칭얼대면 부장은 나에게 왜 비정규직 친구들이 일찍 퇴근하게 내비두냐고 되물었다. 간단하고 시간을 잡아먹는 업무는 그들에게 넘기라고, 그렇게 못하니까 내가 일이 많은 것이라며 나를 몰아세웠다. 배운대로 나의 잡무를 그들에게 넘기다 보니 우리 팀에 배치된 비정규직은 내가 8개월 회사를 다닐 동안 3번 바뀐 것 같다. 더 웃긴 것은 이걸 내 탓인 것처럼 말하던 부장이다. 그녀에게서 회사의 쓴맛을 다 배운 것 같다. ㅎㅎ
나름 비정규직 동료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았지만 이심전심이랄까?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이었으므로 서로의 업무와 회사의 불합리성 등을 이야기하며 친해지게 되었고 그들이 나에게 해 준 이야기는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하루는 내가 넘긴 일을 안하고 칼퇴를 하던 친구에게 왜 일 안하고 가냐며 볼멘소리를 한 적이 있다. 다른 친구들이 저에게 그녀가 일년 계약이 끝난 후 계약 연장을 하게 되었는데 회사에서 11개월 연장을 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리고 2년간 비정규직으로 일을 하게 되면 자동으로 정규직으로 넘어가게 되므로 그것을 피하기 위해 회사에서 그렇게 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보다도 나이가 많던 그녀가 나보다 30% 적게 받는다는 것도 말이다.
경제적으로 어떤 결과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저 이랬던 친구들을 생각하면 노동법 개정을 곱게 볼 수는 없다.
내가 두번째 회사에서 감사하게 생각하는 점은 내가 알지 못했던 세상에 대해 알게 해준 것, 그래서 내가 보지 못했던 부분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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